「매트릭스3-레볼루션」에는 플랫폼에 갇힌 네오의 이야기가 등장한다. 매트릭스 세계에서 절대적 존재인 ‘The One’ 네오는 그 플랫폼 안에서 자신의 힘을 발휘하지 못하고 시스템에 구속당한다. 또한 플랫폼의 관리자는 플랫폼 밖에서 전혀 높은 계층의 사람이 아님에도 플랫폼 안에서 만큼은 절대자 네오를 뛰어넘는 절대적인 영향력을 갖는다. 영화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아이유를 포함한 다수의 아이돌들이 이런 상황에 놓여있기 때문이다. 때문에 아이돌의 이야기를 할 때는 반드시 스타 혹은 아이돌 시스템에 대한 이야기를 깔고 들어가야 한다.
요즘 아이유의 ‘제제’ 해석에 대해 논란이 커지고 있다. 허지웅 씨가 트위터 멘션을 날렸을 때는 그러려니 했는데 윤종신 씨에 이어 진중권 교수까지 거들고 나섰다. 이들이 표면적으로 내세우는 것은 ‘해석의 자유’ 문제다. 그리고 이 발언은 ‘표현의 자유’ 문제와도 긴밀하게 연결된다. 해석은 표현을 통해 전달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역설적으로 이들의 주장은 표현의 자유 범주에 들어가는 비판의 자유를 제한할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다. 또한 이런 주장이 일견 지당한 것처럼 들리지만 맥락에 병치해보면 너무 허무한,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인 종류의 말이라는 것이 드러난다.
먼저 이들의 지적은 좁은 범주의 자유를 강조함으로써 더 넓은 범주의 자유를 등한시한다. 지극히 당연한 일처럼 상황을 정리해버리면 이후의 비판을 모두 억제하는 효과가 나타난다는 이야기다. 사태는 출판사의 오지랖에서부터 논란이 시작됐고 대중의 비판(그리고 비난)으로 이어졌다. 그런데 대중의 비판은 출판사의 문제제기를 원재료로 하고 있기 때문에 뗄 수 없는 관계다. 따라서 출판사의 오지랖을 비판하고 마무리하는 안이함은 대중의 비판을 가로막는다. ‘별 문제 없는 일인데 입 다물라.’라는 말은 출판사에 한정된 것이 아니라 대중에게도 그대로 전달된다.
또한 이런 주장이 허무한 이유는 스타 시스템에 대한 고려가 빠져있기 때문이다. 아이유는 논란이 발생하고 사과문을 공개했다. 완전히 몸을 낮춘 일방적인 사과였다. 이것은 분명히 아이유가 플랫폼에 서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욕구와 욕망이 뒤섞인 플랫폼은 그 안의 규율을 엄격하게 설정하고 있다. 그 안의 스타들은 대중의 관심을 얻음으로써 생명력을 유지한다. 이 명제의 힘이 워낙 강력한 공간이기 때문에 때로는 옳고 그름의 판단, 보편적 상식이 왜곡되어 표출되기도 한다. 실재보다는 이미지의 공간이고 현실보다는 환상의 공간이다. 아이유는 자의든 타의든 그런 플랫폼에 남겠다는 의사를 밝힌 것이다. 아이유에게도 대중을 설득할 여지는 충분히 있었다. 지난 앨범에서 「분홍신」을 통해 아이돌로서 성장한 본인의 자전적 요소를 담았고 이번 「스물셋」 앨범에도 그런 요소가 나타난다. 때문에 제제에 대해서도 문학의 모티브를 차용해 자전적으로 해석했다는 등의 설득을 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플랫폼에서는 이것이 잘 통하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알았던 것이다. 구구한 설명은 괘씸죄에 걸리기 딱 좋다. 불합리한 공인 만들기의 재연이다.
이런 상황의 존재를 인식한다면 지엽적인 올바른 말은 공허해진다. 예술가로서의 가수에게 표현의 자유를 보장하라는 지당한 말은 플랫폼에 들어서며 그 힘을 잃는다. 때문에 플랫폼에 균열을 가할 목적의 주장이 아니라면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인 말이다. 더구나 당사자가 플랫폼에 머물길 원한다면 플랫폼 밖에서 무슨 이야기를 해도 변하는 것은 없을 것이다. 그리고 싸움은 플랫폼 밖에서나 가능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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