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조국 법무장관 인사검증 국면은 기득권 생존본능의 충돌로 해석할 수 있다. 첫 번째는 정치권력이다. 자유한국당 등 야당은 조국과 그를 임명한 문재인 대통령에 대한 공격에 나선 것으로 볼 수 있다. 자유당 입장에서는 총선이 위태로울 수밖에 없다. 자당에서 배출한 박근혜 대통령이 헌정 사상 처음으로 탄핵된 이후 그 누구도 정치적 책임을 지지 않았다. 때문에 자유당에 대한 심판 논리는 다음 총선에서도 여전히 유효했다. 이런 주장을 조금이라도 흐트러뜨리려면 현 정부에 대한 타격을 입힐 필요가 절실했다. 때마침 현 정부 출범 때부터 함께 한 조국이 인사검증 시험대에 올랐고 야당은 기다렸다는 듯이 물어뜯었다. 우여곡절 끝에 조국이 법무장관으로 임명된 이후에도 야당은 조국에 대한 공격을 이어갈 태세를 보이고 있다.
두 번째는 검찰이다. 시대가 변했다고 해도 검찰이 가진 권한은 다른 나라에서 유례를 찾기 어려울 정도로 막강하다. 그러한 권력은 검찰 자체적으로, 때로는 정치세력과 결탁해 때때로, 행위주체의 필요에 따라 남용됐다. 이러한 폐단에도 불구하고 사실상 단죄의 흐름을 좌지우지할 수 있는 무소불위의 권력을 이용해 스스로 위기를 넘어갈 수 있었다. 그런데 조국과 문재인의 조합은 검찰 입장에서 변화의 가능성을 상징했다. MB 정권 검찰의 모욕주기식 수사로 스스로 목숨을 끊은 노무현 대통령의 변호인, 검사와의 대화에서 대통령이 모욕당하는 모습을 지켜봤던 민정수석이 지금의 문재인 대통령이다. 조국은 검찰의 권한 분산을 학문적 업적으로 쌓아왔을 뿐 아니라 사회운동으로 실천해왔던 사람이다. 정부의 의지로만 봤을 때 지금 만큼 검찰 개혁 가능성이 큰 때도 없을 것이다.
이러한 검찰의 인식은 대통령의 인사권, 국회의 인사청문권을 깨부수는 방식으로 나타났다. 국회가 청문회 날짜를 합의하자 검찰은 야권발 고발에 대한 대대적인 압수수색을 단행했다. 압수수색 시작과 동시에 TV조선은 대통령 주치의 관련 단독보도를 했고, 이어 몇몇 언론들이 검찰발로 의심되는 정보를 통해 단독보도 기회를 가졌다. 동시에 몇몇 자유당 의원의 의혹제기 근거가 검찰 소스 아니냐는 문제제기도 나왔다. 국회 인사청문회가 있던 날, 검찰은 공소시효를 이유로 조 후보자의 부인을 조사 없이 기소했다. 그리고 장관 임명 이후에도 그를 향한 수사는 계속될 것이고 ‘공격이 최고의 방어’라는 원리를 다시 증명하려 할 것이다.
마지막 세 번째는 언론이다. 지금까지 이러한 인사검증 보도 행태는 없었다는 것이 대다수 시사평론가, 언론계 종사자들의 반응이다. 박근혜 국정농단 국면을 포함해 단일 국면에서 이렇게 많은 보도가 쏟아진 적이 없다. 기간이 긴 것도 아니었다. 불과 한달 여 시간이 흘렀을 따름이다. 보도의 양태도 스펙트럼이 넓은 것이 아니라 마치 혐의가 대부분 근거를 갖춘 것처럼 한 방향으로 흘러갔다. 취재를 통한 근거가 나온 것도 아니었다. 일부 언론의 단독보도는 얼마 지나지 않아 대부분 신빙성이 약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러한 착오에도 불구하고 언론들은 그에 대한 의혹보도를 멈추지 않았다. 오히려 검증으로 포장된 공세는 더 기세를 강화했고 보는 시민들로 하여금 숨을 쉴 수 없도록, 정신이 아득해지도록 했다.
주목할 점은 이러한 언론행태가 소위 진보지와 보수지, 정파를 따지지 않았다는 점이다.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면 대체로 전통적 매스미디어에 속하는 언론사들이 이러한 보도를 주도했다는 점이다. 주요 일간지와 지상파, 종편 등 전통적 매스미디어와 팟캐스트, 유튜브 등 뉴미디어의 보도 양태는 달랐다. 전통적 매스미디어는 다급해 보였고 그에 반해 뉴미디어 쪽은 상대적으로 차분한 태도를 유지했다. 일부에서는 이번 보도 참사가 전통적 매체들의 취재 관행, 예를 들면 출입처 시스템 등에 기인한 것이라 분석한다. 일리 있는 분석이지만 그보다는 과거 기득권을 유지해왔던 전통적 매스미디어와 새롭게 부상한 뉴미디어의 대립구도라는 틀에서 사안을 바라볼 필요가 있다. 앞서 언급된 출입처시스템 등도 이러한 구도 안에 포함된 것이기 때문이다.
시민들, 특히 정치고관여층에게 전통적 매스미디어의 영향력은 점차 떨어지고 있다. 그들이 숭앙했던 중립, 형평, 비당파성이라는 고전적 가치들에 대해 시민들은 이미 오래 전부터 의문을 표했다. 오히려 그러한 가치들은 필요에 따라 그때그때 취사선택되는 면피용 도구로 인식되고 있다. 이러한 인식이 본격적으로 시민들 뇌리에 각인된 것은 세월호 참사 때였다. 거대 방송사들은 제대로 취재하지 않은 채 정부의 발표를 그대로 보도함으로써 ‘전원구조’라는 거대한 오보를 냈고, 당시 지역 방송사에서 전원구조가 사실이 아님을 서울 보도본부에 전달했지만 묵살됐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이러한 불만은 계속 쌓여갔고 적극적으로 표출된 것이 촛불혁명 기간이었다. 시민들은 기성언론도 국정농단의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고 비판했다. 태블릿PC 보도로 전기를 마련한 jtbc에 대한 찬사도 있었지만 대부분의 언론들은 따가운 시선과 뼈 아픈 비판에 고개를 들 수 없었다.
문제는 전통적 매스미디어의 오판에 있었다. 언론에 대한 불만은 촛불혁명의 열기와 함께 일시적으로 커졌던 것이 아니었다. 시민들은 각자의 위치에서 기성언론의 존재이유를 물었다. 그러나 기성언론은 그 물음에 끝내 답하지 못했다. 촛불혁명 이후 전통적 매스미디어가 시민들에게 보여준 변화라는 것이 고작 유튜브 채널 몇 개 판 것 외에 찾기 어렵다. 그러는 와중에 전통적 매스미디어가 영향력을 잃어가고 있다는 징후는 몇 차례 감지됐다. 먼저 지난해 지방선거 국면에서 김경수 경남지사와 이재명 경기지사는 상대 정파와 언론들로부터 막대한 공격을 받았다. 그들은 이러한 공격을 견디고 당선된다. 그리고 SBS <그것이 알고싶다>는 문제의 이재명 조폭 연루설을 보도했다. 당시 방송은 자극적인 편집으로 파장을 일으키는 듯 보였지만 곧 보도의 논리적 허점이 속속 지적되며 ‘그알’ 역사의 오점으로 남게 됐다. 그리고 이듬해 1월 손혜원 목포 땅투기 의혹 보도가 대서특필됐다. 이번에도 의혹의 불을 댕긴 것은 SBS였다. SBS는 며칠 동안 매인 뉴스의 상당 시간을 할애해 의혹을 집중 보도했다. 그리고 보수언론과 인터넷언론사들이 합세해 의혹을 증폭시켰다. 이러한 언론의 집중공세에도 불구하고 정치인 손혜원 한 사람을 무너뜨리지 못했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당시 상황은 언론계와 정치권을 놀라게 했다. 정치인이 이 정도 공격을 받으면 ‘죽는’ 것이 보통이라는 것이다. 이것은 곧 ‘죽는 척’이라도 해야 언론의 공세가 점차 수그러든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더구나 선거 때처럼 상대방이 있는 것도 아니고 그저 정치인 한 사람에 대한 공세였다. 그런데 손혜원이라는 보기 드문 정치인이 전례 없는 일을 만들었다는 평가가 나왔다.
이러한 일련의 흐름을 지나 조국 인사검증 국면을 맞이했다. 자유당은 조국 법무장관 지명 전부터 지명을 포기하라고 엄포를 놓았고 대통령의 지명과 함께 전쟁을 선포했다. 기성언론도 이러한 흐름에 동참했다. 조 후보자의 사노맹 활동 지적에서 딸의 입시부정 의혹으로, 입시부정 의혹은 금수저 특혜 논란으로 변모했다. 그리고 부동산 차명거래 의혹은 채무 불이행을 위한 조국 동생 부부의 위장이혼 의혹으로 발전됐다. 또 공직자가 어떻게 블라인드 사모펀드 같은 것을 하느냐며 그 자체가 위법한 것처럼 묘사하더니 곧 사모펀드를 통해 사실상 직접투자를 했을 수 있다며 법 위반을 의심했다. 하다하다 결국 딸의 봉사활동 표창장 위조 의혹도 등장했다. 앞서 언급했듯이 언론의 조국 법무장관 인사검증 과정은 정파나 이념 대결이 아니었다. 전통적 매스미디어의 단합된 공세였다. 기성언론의 의혹보도는 거대한 폭포수와 같이 우리 사회를 휩쓸었다. 보도의 양과 분위기만으로 독자들을 압도했다. 그런데 시민들이 이러한 흐름에 제동을 걸었다. 기성언론들이 주목하지 않았던, 조국 후보자 의혹의 허점, 반론들을 스스로 찾아나가기 시작했고 콘텐트를 만들어 유통하기 시작했다. 또한 각자 합리적이라 생각하는 팟캐스트나 유튜브 콘텐트를 공유했다. 여기에서 더 나아가 기성언론 콘텐트가 유통되는 포털사이트 실시간 검색어 순위에 특정한 메시지를 올리는 방식으로 압박을 가하기 시작했다. 이 과정에서 ‘언론과 시민의 대립’이라는 구도가 뚜렷해졌다.
시민들은 전통적 매스미디어 전반에 대해 비판했다. 그 중에서도 가장 높은 신뢰도를 보유하고 있는 JTBC <뉴스룸>, 그리고 앵커인 손석희 대표이사에게 비판의 화살 상당량이 쏠렸다. 다른 언론사의 논조와 비슷하거나 톤이 약하더라도 손 앵커를 통해 전해지는 보도는 그 영향력이 다르다는 뜻이었다. 동시에 시민들이 의아했던 것은 <뉴스룸> 특유의 추가 취재를 통한 맥락보도가 보이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저 <뉴스룸>은 소극적으로나마 타사의 보도를 답습했다. <뉴스룸>의 이러한 보도 태도는 다른 기성언론들이 펼쳐놓고 있는 의혹 보도의 당위를 지지하는 것으로 읽히기 충분했다. 특히 시민들이 문제 삼았던 것은 앵커브리핑이었다. 앵커브리핑은 그날의 시사 흐름을 문학적 상상력으로 풀어낸 유용한 도구였다. 그리고 작가의 도움도 있다곤 했지만 이는 곧 손 앵커의 입장으로 인식됐다. 조 후보자의 기자간담회, 국회 인사청문회가 있던 주, 손 앵커의 앵커브리핑은 두 번 있었다. 하나는 ‘정말 지루한 장마였다’, 다른 하나는 ‘성문의 수호신, 야누스’였다. 손 앵커의 메시지가 김어준처럼 직설적이었다면 불필요한 오해는 피할 수 있지 않았을까. 최소한 조국을 향한 공세가 부당하다고 생각하는 시민들에게 그 주의 앵커브리핑은 모두 부정적으로 인식됐다. 첫 번째 앵커브리핑 ‘정말 지루한 장마였다’에는 조국 둘러싼 여론지형이 결국 봉합될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한 우려가 담겨 있다. 지금도 그러하지만 조국 임명과 관련된 여론은 딱 절반으로 갈라져있고 당시 조국을 공격하는 쪽과 옹호하는 쪽은 조금의 양보 없이 긴박하고 강렬한 에너지를 쏟아냈다. 고기압과 저기압이 만나 형성한 장마전선 속에서 어떤 시민은 장대비를 맞으며 고개를 치켜들었고, 어떤 시민은 고통스러워했다. 두 번째 앵커브리핑 ‘성문의 수호신, 야누스’에 대해서는 손 앵커가 조국을 비난한 것으로 인식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았다. 단지 ‘겉과 속이 다른 사람을 일컬어 야뉴스 같다고 말하기 시작했다’는 대목에서 야당의 공격포인트 중 하나였던 위선, 표리부동과 같은 키워드를 읽어냈던 것이다. 하지만 전체적 맥락을 보면 조국 후보자가 청문회라는 ‘야누스가 지키는 성문’을 지날 것이라는 내용이었음을 알 수 있다. 여야가 대립하고 있는 국회라는 기관이 야누스적이며, 타인 일에는 냉정하지만 자신의 일 앞에서 한 없이 작아지는 국회의원 개개인도 결국 야누스적 면모를 가지고 있다는 복잡한 상황을 설명하는 비유였다. 그러나 손 앵커의 앵커브리핑이 오독된 것은 결국 다른 언론사와 차별화하지 못했던, 그래서 결국 기성언론의 보도 태도와 맥을 같이했던 기자들의 리포트 위에 놓인 탓이 크다.
조국 인사검증 국면에서 jtbc의 보도에 대해 여러 분석이 나왔다. 출입처 시스템에 의지하는 기자들이 일방적으로 제공되는 정보에 매몰된 것이라는 분석과 함께 손 앵커가 사실상 보도에 영향력을 행사하지 못하게 된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왔다. jtbc <뉴스룸> 역시 인사검증 국면에서 조 후보자에게 부정적인 보도가 주류를 이룬 것이 사실이다. 8월의 대부분을 일본의 경제침략, 후쿠시마 방사능 우려, 2020년 도쿄올림픽에 초점을 맞췄지만, 조 후보자 관련 의혹에 대해서는 의혹을 제기하는 쪽 목소리를 비교적 여과 없이 전달했다. 조 후보자에 대한 부정적 보도는 대통령의 지명 이후 열흘 여 지난 20일 본격 시작됐다고 볼 수 있다. 그러다가 검찰이 대대적인 압수수색을 단행한 28일, 그리고 조 후보자가 무제한 기자간담회를 진행한 2일, 국회 청문회 하루 전인 5일 기류 변화가 일부 확인됐다. 시민들이 <뉴스룸>보도에 부정적 평가를 내린 것은 시민들에 비해 기자들의 사실관계 파악이 늦었던 이유도 크다. 동시에 의혹을 제기하는 쪽에서 제공하는 정보는 비교적 수월하게 보도한 반면, 확실한 경우가 아니고서는 조 후보자에게 유리한 반론보도가 잘 나오지 않았다는 점도 지적할 수 있다. 이런 시민들의 불만은 그대로 손석희 책임론으로 이어졌다. 온라인에서는 부정적인 이미지를 증폭시키는 원색적 비난도 다수 나타났다. jtbc 보도 기능에서 손 앵커가 차지하는 상징적 의미가 크다는 방증이기도 했다. 물론 손 앵커가 기자의 리포트를 그대로 받아들인 것은 아니었다. 검찰의 대대적 압수수색이 있었던 8월 27일 백종훈 기자와의 대담에서 백 기자가 검찰이 압수수색으로 자료를 확보하면 범죄혐의로 확대될 가능성이 있다고 말하자 손 앵커는 그것을 바로 정정했다. “이것이 곧바로 범죄 행위로 연결될 것이다 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예단일 뿐이지 그것을 확정해서 얘기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검찰이 국면의 주도권을 쥐게 된 상황에 주목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러한 모습은 리포트 방향에 손 앵커가 관여하지 않는 상황, 혹은 하지 못하는 상황일 수 있다는 의구심을 가중시키기 충분했다.
그리고 9일 월요일 <뉴스룸>의 앵커브리핑은 없었다. 그 대신 의미심장한 엔딩곡이 흘러나왔다.
“Holding back the years – Simply Red”
이는 누구를 향한 메시지일까. 가사를 쓴 믹 허널(Mick Hucknall)은 곡에 대해 “이 곡은 사람들이 이제 집을 떠나 자신의 본분을 행해야 하는 때를 맞이하지만, 바깥세상이 두려워 억지로 시간을 붙잡고 있는 모습을 특징화했다”고 설명했다. 이곡이 화살처럼 날아가 박힐 곳은 정치권일수도, 검찰일수도 혹은 언론일 수도 있다. 심지어 세 기득권 모두를 향한 것일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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