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news.donga.com/Main/3/all/20180827/91688100/1
지난 20일 JTBC <뉴스룸> 앵커브리핑의 테마는 클린턴의 대선 슬로건이었다. “문제는 경제야, 바보야” 자신의 보좌관이었던 르윈스키와 성추문으로 정치적 위기에 직면했음에도 성공한 대통령으로 남을 수 있었던 이유는 재정지표 흑자, 즉 경제 정책의 성공이었다는 설명이었다. 이날 방송 이후 문제 지적의 방향이 틀렸다는 지적이 많았다. 문재인 정부 집권 1년 3개월 여 만에 아주 가혹한 잣대를 들이대는 것 아니냐는 지적, 실제 경기가 나쁜 것이 아니라 보수진영의 언론과 정치세력이 분위기를 끌어내리고 있는 것이라는 지적 등. 그렇다면 클린턴의 대선 슬로건을 조금 바꿔보면 어떨까. '문제'라는 단어를 '쟁점'으로. “쟁점은 경제야, 바보야”
조금 성급한 면이 없지 않지만 보수진영이 경제 문제를 화두로 꺼내들어 정부를 비판하고 나섰다. 집권 반환점을 돌 즈음 경제 성적표를 깃발처럼 흔들며 정부를 공격했다면 더 효과가 컸을 것이다. 허나 문재인 정부의 첫 예산이 집행된 지 겨우 8개월 정도 지났을 뿐임에도, 박근혜 탄핵 정국 6개월 동안 사실상 국정이 멈췄음에도, 경제 정책이 체감되려면 꽤 긴 시간이 필요함에도 모든 것이 문재인 정부의 경제 무능 때문이라고 비판하고 있다. 다급함이 느껴진다.
노무현 정부 말기 ‘이게 다 노무현 때문이다’라는 유행어가 온라인을 뒤덮었다. 옆집 개가 짖어도 노무현 때문이라는 말이 나왔을 정도로 당시 민심 이반은 심각했다. 이런 유행어가 쉽게 받아들여졌던 것은 경기 좋지 않아 살기가 힘들다는 분위기 때문이었다. 사회에 불안이 정부 불만으로 발전했던 것이다. 이런 분위기를 만든 일등 공신은 보수언론, 특히 주요 경제지였다. 그들이 경제가 위기라고 지겹게 떠들자 국민들은 경제가 어렵다고 인식하게 됐다. 경제가 어렵다는 주장을 끈기 있게 쏟아내면 경제는 어려워진다. 기분 탓이 아니다. 구름이 찬바람을 불어댈수록 외투를 여미는 손아귀에 힘은 더 들어가기 마련이다.
27일 동아일보에 “장하성은 ‘계륵’인가”라는 제목의 사설이 실렸다. 김순덕 논설주간이 쓴 이 사설에는 현재 보수진영의 생각과 태도가 여실히 드러나 있다. 사설의 내용을 한 문장으로 요약하면 이렇다. ‘문재인의 참모 장하성은 무능한 사회주의자다’ 주목할 것은 민주정부에 대한 부정적 인식 혹은 거부감이 사설 전체를 관통하고 있다는 점이다. 사설 도입부에는 신임 이해찬 대표의 강경한 캐릭터를 언급한다. 그러면서 이 대표의 ‘수구적 강성 투쟁 전략이 문재인 정부 성공에 도움이 될지도 불안하다’고 썼다. 이어 민주당 전당대회 현장에 상영된 문 대통령의 축사 영상을 문제 삼는다. 해당 영상에서 문 대통령이 소득주도성장과 공정경제를 강화하겠다고 밝힌 것을 두고 민심과 불통한다고 비판했다. 그리고 같은 날 장하성 실장의 기자 간담회 내용을 연결해 비판한다. ‘그럼 과거 대기업, 수출 중심 성장정책으로 돌아가자는 거냐’는 장 실장의 발언은 노무현 화법이라는 언급도 빼놓지 않았다. 김순덕 논설이 장 실장의 기자간담회 영상을 봤는지 모르겠지만 정확한 워딩은 “만약 소득주도성장 정책이 아니라면 다시 과거의 정책으로 회귀하자는 것입니까?”였다. 김순덕 논설의 표현만 보면 정부가 반기업, 반수출 기조를 가지고 있는 것 같다.
사설이 내포한 더 큰 문제는 현 정부를 사회주의 정부로 낙인찍고 사회주의를 악마화하는 데 있다. 먼저 현 정부는 엄밀한 의미에서 사회주의 정부가 아니다. 기업이 사내유보금을 쌓아두는 걸 비판할지언정 그것을 빼앗지 않으며 기업의 생산수단을 국유화하지 않는다. 복지 등 사회안전망 강화를 사회주의 아니냐고 비판하기도 하지만 그것은 복지국가와 사회주의 국가를 무책임하게 혼용한 것이다. 한편 사회주의는 악이 아니다. 김순덕 주간은 19세기 귀스타브 르봉의 표현을 빌려온다. 사회주의의 이상은 “일은 더 적게 하고, 쾌락은 더 많이 즐기라”고 설파하는 것이라 했다는 것이다. 퍼주면 나태해진다는 고언을 되 읊은 것인데 말 그대로 고급진 헛소리다. 악의적이다.
다시 처음으로 되돌아가면 쟁점은 경제가 될 것이다. 그렇기에 ‘문제는 경제’다. 보수진영이 존재하는 한, 보수경제지가 존재하는 한 경제 무능 프레임을 활용한 공격은 계속될 것이다. 상수라고 봐도 무방하다. 그러다가 문재인 정부를 노무현 정부의 재탕이라고 규정하며 경제는 보수라는 무리한 주장을 내놓을 것이다. 경제활동을 위축시키는 보도를 쏟아내는 등 국가경제에 악영향을 미치는 행동마저 마다하지 않고 현 정부를 공격하려 할 것이다.
결국 보수세력이 형성한 프레임을 깨는 방법 밖에 없다. 현 정부가 오히려 ‘문제는 경제야, 바보야’라는 말로 반박할 수 있는 실력과 자신감을 가져야 한다. 이를 위해 정부는 정책의 명과 암을 국민들이 알 수 있는 언어로 끊임없이 설명해야 한다. 또 지지자들 역시 경제 이슈의 핵심이 무엇인지 기꺼이 관심을 가져야 한다. 동시에 변화를 의연하게 받아들이는 마음가짐도 필요하다.
지난 국정농단 사태에서 드러난 정경유착이라는 적폐 바로잡기 작업은 아직 시작되지도 않았다. 당시 문제가 됐던 경제인에 대한 재판이 끝나지도 않은 상황에서 그들은 박근혜 정부의 피해자일 뿐이라는 주장이 벌써 나오고 있다. 과거나 지금이나 정치권력과 경제권력은 착취-피착취 관계가 아닌 적극적 공생관계다. 다시 강조하지만 경제계 적폐청산은 시작하지도 않았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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