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청난 스포츠 이벤트가 우리나라에서 열릴 예정이라고 가정해보자. 미국의 슈퍼볼보다 몇 배는 더 파급력이 큰 이벤트로 전세계의 이목이 집중될 것이다. 그래서 모든 도시에서 유치를 원하는 상황이다. 유치만 할 수 있다면 잭팟이 터지는 상황이다. 다만 다른 나라들이 주축이 되는 이벤트다. 그래도 괜찮은 것이 직접적으로 벌어들이는 대관 수입, 입장권 수입 광고 수입은 물론이고 세계적으로 우리나라의 이미지를 높일 수 있어 우리 경제에 큰 도움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굿이나 보고 떡이 먹으면 그만이다. 하지만 이제는 이 꿈에서 깨야할 시간이다. 사드 배치 논의는 이것과 정반대의 위치에 있다. <뉴스룸>의 사드 토론을 보면서 목구멍에 뭔가 막힌 것 같은 느낌을 받았던 이유는 행복한 꿈이 아닌 악몽을 계속 떠올리는 과정이었기 때문이다.
토론은 전쟁 상황을 가정하고 진행됐다. 아마도 북한의 4차 핵실험과 미사일 시험으로 위협이 높아졌다는 판단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사드의 실제 효용성, 배치 지역의 적합성, x밴드 레이더 전자파 위험성 여부를 세부 논제로 삼았을 것이다. 토론을 지켜보는 시청자들은 계속 전쟁 상황을 계속 머릿속에 떠올리게 된다. 미국이 미군 방어용으로 배치하려는 거니까 두고 보자는 박휘락 교수, 모든 미사일을 다 막을 수는 없어도 사드를 배치하는 것이 도움이 될 것이라고 강변한 김민석 전 국방부 대변인의 말을 듣고 있자니 곧 전쟁이 일어나도 이상하지 않을 것 같은 생각이 들 정도다.
시각을 조금만 돌려 사드 배치에 찬성하는 측의 발언을 들여다보면 지향해야 할 방향이 보일 것 같다. 기본적으로 사드 배치는 우리나라가 운동장을 제공하는 것과 같다. 그 운동장은 한미일과 북중러의 신냉전 갈등이 실현될 곳이다. 좁게 보면 미중이 벌이는 경쟁의 최전선이다. 경기장을 빌려주면 우리에게도 떨어지는 게 있어야 할 텐데 현실은 정반대다. 당장 중국 정부와 민간이 보이지 않는 보복에 나설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또한 미군이 사드를 들여오더라도 박휘락 교수의 말대로 우리도 덕을 보는 부분이 있기 때문에 방위분담금에 슬그머니 사드 운영비 일부를 얹을 수 있다는 지적도 나왔다.
사드의 효용성 이전에 먼저 생각해야 할 것은 한반도 긴장을 관리할 수 있는 정부의 능력을 요구해야한다는 점이다. 김민석 전 대변인은 핵미사일 30기 이상 날아오면 미국도 막을 수 없다면서 사드가 만능은 아니라고 당당히 말했다. 가령 수백 수천기의 패트리어트 미사일과 노동 미사일이 날아왔을 때 사드로 피해는 줄일 수 있다는 취지의 발언이다. 이것은 현 정부가 북한의 미사일이 날아올 수 있는 정세로 이동할 수 있음을 시인한 것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 그동안 역대 정부 그리고 박근혜 정부 전반기까지도 북한과의 물리적 충돌 가능성을 줄이는 방향으로 한반도 정세를 관리했다. 하지만 이제는 북한의 미사일이 날아오는 것을 가정하며 피해를 줄이겠다고 국민들에게 말하는 것이다. 이것이 이치에 맞는 말인가. 대통령은 한반도의 긴장을 낮추고 평화통일을 지향해야 할 의무를 갖는다. 지금 우리의 상황은 ‘고래 싸움에 등이 터진 새우’도 안 된다. 현 정부를 포함해 사드 배치에 찬성하는 측의 주장대로 북한이 말도 안 통하는 절대악이라고 치자. 그래도 민주 정부라면 절대악이 돌발행동을 하지 못하도록 먼저 상황 관리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 국민의 입장에서 볼 때 사드를 배치해서 미사일 몇 기 막는 것보다 미사일이 안 날아오도록 하는 것이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는 이미 경기장을 제공한지도 모른다. 미중의 갈등은 한반도를 사이에 두고 점차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다. 마치 경기를 앞둔 양팀이 신경전을 벌이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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